이제 다음 달이면 디스콰이엇에 합류한지도 2년째,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23년은 이전에 비해서 더 정신없었고 그만큼 배운 것도, 아쉬운 것도 너무 많은 해다. 연말에 하나씩 정리해 보면서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지며 회고를 작성해 봤다. 잘한 것, 아쉬운 것, 배운 것, 내년의 목표와 지금 당장 실행할 것을 키워드로 정리했다. 사진은 집 지하실을 부시고 리모델링하다 찍은 건데, 회고하면서 기존 경험과 지식을 Unlearn하고 새출발하는 의미를 부여해서 썸네일로 선정했다 ㅎㅎ
2023 Lookback
사람
나는 여러 문제를 사람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항상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보려고 하고, 그런 자리를 주도적으로 만드는 데 거리낌이 없다. 올해도 다양한 방식으로 사람들을 만났다. 메이커 타운, Community for Community Makers, Product Maker's Club Summer/Winter 2023 처럼 디스콰이엇 주도 프로젝트를 통해서도 많이 만났고, 정주영창업경진대회 알럼나이로 올해 12기 분들과도 새로운 인연들이 생겼으며, 개인적으로 그로우앤베터 강의와 솔샘고등학교/북일여고 멘토링, SOPT MIND23 토크 등을 통해서도 여러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항상 재밌고 설레이는 일이다. 사람마다 성장 환경, 경험, 성향, 능력, 욕망이 모두 다르기에 대화하면서 새로운 관점을 주고받으며 성장하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로도 발전한다. 종종 사람들을 만나 대화하다 보면 '아 그렇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하는 순간을 느낄 때가 있다. 마침 얼마 전 김도엽님과 커피챗을 하면서, 도엽님은 내게 질문을 던졌다 '만나본 사람들 중에 가장 인상 깊은 사람이 누구였냐'. 곰곰이 생각해 봤다. 나에게 '인상 깊은'이 무엇일까. 아마도 '실행 가능한 영감'을 주는 사람이 가장 인상 깊은 사람인 것 같다. 무언가 추진하고 실행하는 것은 에너지 소모가 크고 불확실함이 항상 존재하는데, 이를 이끌어 내는 영감이 주는 가치는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영감을 꾸준히 주고받도록 하자, 그리고 내가 먼저 좋은 영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고 다짐한다.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직간접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종종 네트워킹하고 인간관계를 만드는 것이 의미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만난다. 나에겐 최근에도 실제로 도움을 주고받은 관계로 발전한 경우가 많이 생겼다. 특히 올해 8월에 만났던 분들과 여러 협업도 했고 앞으로도 다양한 걸 같이 해보려는 중이다. 대표적으로 디스콰이엇에서 가장 핫한 AI 클럽인 10X AI Club의 용혜림님, 다양한 경험을 보유하신 1M 부트스트랩 클럽의 알렉스님, 제 생산성을 책임져주시는 오프라이트 김진홍님 홍남호님, 언제나 허슬하시면서 영감을 주는 비즈니스캔버스 팀, 디스콰이엇 PMC W23를 빛 내주신 Dalpha AI 팀, 메이커들에게 LLM 인사이트를 매번 전해주시는 코르카 백승윤님, 이외에도 올해 되는시간에서 700명이나 만난 것을 확인했는데 정말 많은 분들과 영감과 도움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모두 너무 감사한 인연이고 더 많은 도움을 드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쓰면서 생각난 건데 지금까지 도움을 주고받은 사람들이 만나자마자 좋은 관계가 된 것은 아니다. 주기적으로 소통하고 서로에게 필요한 것을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 순간 그렇게 되어있더라. 사람은 장기적으로 보는 게 중요하다.
여행
가능한 만큼 많이 다녀보려고 했다. 여행만큼 시야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되는 행위는 손에 꼽는 것 같다. 올해 해외로는 베트남, 인도네시아를 다녀왔고 국내에서는 가족과 캠핑을 종종 다녀왔다. 해외여행에서 동남아시아 국가를 선택한 이유는, 원래 SEA 지역 스타트업 생태계에 관심이 많았고 대학생 시절 첫 창업을 동남아에서 해보고 싶어 했기에 호기심으로 갔다. 세계에서 가장 젊은 인구 피라미드를 보유하고 IT 인프라가 빠르게 성장하는 곳을 꼽으라면 SEA와 인도 말고는 없다. 이런 시장에 대해 순수하게 궁금했고, 일부러 관광지보단 실제 삶을 경험해 보려고 했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여행지로는 거의 메리트가 없는 수도 자카르타에만 있었는데, 빈부격차가 엄청 심하고 화교계가 부를 모두 차지하여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가 있다. 나는 화교계처럼 생겨서 ㅋㅋ 현지 사람들만 이용하는 대중교통, 상업시설, 식당 등을 갈 때마다 이목을 집중시켰다. 도대체 저 사람이 왜 여기 있지? 하는 눈빛들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아이러니한 것은 기저귀 모델이 하얀 피부를 가진 동아시아 아기들만 있다는 것이다. 그것을 구매하는 건 갈색 피부색을 가진 다수의 국민들이다. 기저귀뿐만 아니라 사람이 광고 모델인 경우 대부분 그러했다.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에선 빈부격차가 생겨날 수밖에 없는 것 같고, 그래서 빌 게이츠 같은 사람들은 효율적 이타주의를 선호하는 게 아닐까? 부를 최대한 빨리 모아서 선한 곳에 투자/소비/기부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는 것 말이다. 한국에만 있으면 깨닫기 어려운 사실들을 빈부격차가 정말 심한 곳에서 살로 느껴보니 미디어로만 보던 것보다 훨씬 생생하게 다가오고, 내 생각이 더 많이 성장함을 느낀다. 앞으로도 종종 해외든 국내든 완전히 다른 환경을 접하는 걸 멈추지 않으려고 한다. 여러 가지 상황을 다면적으로 경험하고, 문제 해결의 영감을 얻는 데 항상 큰 도움이 된다.
배움과 성과
2년간 정말 다양한 가설을 실험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면서 여러 가지를 느꼈다. 성장을 위해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실험하는 것은 필수다. 하지만 새로운 실험이나 도전만 맹목적으로 추구하다 보면 성과가 떨어질 수 있고, 이것이 반복되면 팀과 개인의 자신감이 떨어지면서 악순환이 이어질 수 있다. 어느 정도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을 일부 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곁들이는 것이 꾸준히 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이런 생각 때문에 배움과 성과에 대한 역설을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배우는 데 집중하면 성과가 낮고, 성과를 높이면 새로 배우는 게 적어진다. 성과를 내는 것은 무언가 새롭게 배우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다. 원래 잘하던 것을 하던 대로 하면 예상한 만큼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는 것은 컴포트 존을 벗어나는 일이고 이를 통해 성장하게 된다. 하지만 내가 했던 경험처럼 팀이 지속적으로 성과를 내지 못하면 역효과가 날 수 있다. 이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은 '할 만 한데 컴포트존을 벗어날 정도의 도전'을 하는 것이다. 특정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면 8 정도는 익숙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으로, 나머지 2는 새로운 실험과 도전을 해보는 것이다. 나는 이 비율 조절에 종종 실패해서 극단적으로 성과가 안 나오거나 뜻하지 않게 잘돼버리는 걸 모두 경험했다. 성과 잘 나오면 좋은데 안 그럴 때는 팀의 사기가 떨어지고 다음 액션의 자신감이 줄어들기 때문에, 앞으로는 잘 조절해 보려고 한다.
팀 차원에서 올해 초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은 분들에게 교육도 제공하고, 이벤트도 진행해 보고, 그로우앤베터 강의도 하면서 나도 커뮤니티에 대해 더 많이 배우는 기회가 되었다. 앞으로도 개인이든 기업이든 각자의 커뮤니티를 만들고자 하는 니즈는 꾸준히 존재하거나 혹은 더 많아질 것 같다. 1인 창업, 인디 메이커들이 많아지는 것과 기존 광고 채널의 효율이 감소하는 트렌드가 맞물려서 모두가 나만의 Distribution 채널을 확보하고 싶어 할 것 같다. 관련해서 여러 가설을 가지고 지금 이미 실험해 보고 있다.
6~8월에는 채용 비즈니스를 이해하기 위해 정말 많은 세일즈와 유저 인터뷰를 했다. 나는 30팀 정도 만나서 대화했고, 세일즈를 마음먹고 제대로 해본 건 이때가 처음이었는데, B2B 고객과 소통하는 법을 조금이나마 깨우친 소중한 경험과 배움이다. 채용에 대해서 갖고 있는 문제, 기존 채용 서비스에 대한 불만, 채용 서비스 결정 기준 등을 발견했고 디스콰이엇이 채용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무엇이 선제적으로 준비되어야 하는지 파악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고객과 대화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걸 다시 깨달았다.
올해 말은 메이커들의 소셜 네트워크를 잘 만들기 위한 액션에 더 집중하고, 규모가 더 큰 프로그램/행사를 진행해 보려고 했다. 그게 바로 Product Maker's Club이었고, 처음으로 160명 규모의 네트워킹과 격주로 진행하는 Fireside chat 등을 기획하고 운영해 보는 경험을 했다. 이것도 해보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던 것들이 많이 있다. 이벤트가 잘 운영되기 위한 가이드, 팀원과 참가자와 파트너와 소통하는 법, 이벤트에 참여하는 이해관계자들의 JTBD, 그리고 소중한 레퍼런스들을 얻었고 다음에 더 잘할 수 있는 법을 깨우치는 과정에 있다. 또 이벤트를 일회성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커뮤니티화하기 위해 여러 액션을 해보는 중이다.
팀
자연스럽게 이어서 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나는 아직 팀으로 일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다. 애초에 팀으로 일한 경험이 많지 않기도 했고, 혼자서 0-1 하는 것에 더 익숙했다. 근데 올해 가을부터 Operator 팀원 수가 4명이 되다 보니 내 일만 신경 써선 안되었다. 서로 소통이 부족해서 팀의 방향과 맞지 않는 액션을 하고 있거나, 팀원들이 무엇을 해야 될지 모르는 상황이 생겼을 때 스스로 내 리더십의 부족함을 느꼈다. 그래서 Operator 팀과 매일 Standup 미팅을 하기도 하고, 매주 모든 Operator 분들과 1on1을 하면서 고민을 듣고 문제를 미리 파악해서 해결하려고 노력했고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더 잘할 수 있는데 부족했던 것도 많다. 되돌아보니 4가지 정도 있었다.
방향을 제시하는 것
일하는 태도나 방식에 대해 소통하는 것
스스로 우선순위를 잘 세우고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것
팀원의 성향에 대해 이해하는 것
다른 분들에 비해 1년 이상 먼저 Operator로 일하고 있었고, 기존 팀의 방향성과 지금까지 쌓아 온 자산들이 있었기에 이를 적극적으로 소통하며 얼라인을 맞추고 온보딩을 도와야 했다. 방향에 대한 일치가 부족하면 각자가 어떤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지, 무슨 지표가 중요한지, 판단 기준과 원칙은 무엇인지 헷갈릴 수밖에 없고 혼란스러운 상태가 되어버린다. 방향성 뿐만 아니라 일하고 소통하는 법에 대한 일치도 부족했다. 각자의 일하는 방식, 사고하는 방식, 리듬이 다르다 보니 컨텍스트 공유가 잘 안되어 오해가 생기거나 병목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고 문서화를 어디까지 해야 되는지, 어떻게 공유해야 하는지 등의 일치도 부족했다. 그래서 최근 다 같이 소통 프로토콜을 통일하고 문서 템플릿, 작성하는 기준 등 Workflow를 정리했다. 일하면서 계속 피드백을 받고 업데이트를 해보려고 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데 많이 놓치고 있던 것은 팀원들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다. 사람들은 고유의 성향, 취미, 이상, 강점, 약점, 동기 자극 요인, 스트레스 요인들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것들을 파악하지 않은 채 함께 일을 한다면, 필연적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다. 상대방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소통하는 것이 스트레스를 유발하지 않는지, 발휘하고 싶은 강점은 무엇이고 어떤 모습으로 성장하고 싶은지, 자신의 약점을 어떻게 보완하고 싶은지 등을 제대로 알고 있으면 훨씬 협업을 잘 해낼 수 있고 깊은 유대와 신뢰를 쌓아갈 수 있을 거다. 앞으로 1on1을 통해서 꾸준히 성향을 파악하고, 팀이 다 같이 시간을 내어서 주기적으로 소통하고 이해하는 시간을 만들어 보려고 한다.
개인의 성장
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진심이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만 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못하기에, 이상을 바라보되 현실과 괴리를 줄이기 위해 지금 바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을 차근차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고 하면 논리적인 사고력과 사람에 대한 이해도, 그리고 실행력을 꼽고 싶다. 그래서 나는 일을 할 때든 자기 계발을 할 때든 각각을 키우기 위해 쉬지 않고 배운다. 최근 나의 논리적인 사고력이 종종 잘되지 않는 것 같아 박현솔님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현솔님은 변하지 않는 참인 것들에 대해 공부하는 게 논리적 사고를 키워준다고 하셨다. 변하지 않는 참이란 일론 머스크의 사고법으로 유명한 제1원칙에 부합하는 사실인 것을 말한다. 학문을 예로 들면 물리학, 컴퓨터 과학, 심리학, 철학 등이 있다. 일만 하다 보면 이런 것들에 대해 관심을 갖고 배우기가 어려운데, 시간을 내어서라도 배우며 사고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
위에서 얘기한 것들은 Soft skill이라고 생각하고, Hard skill에 대해서도 고민이 있다. 나는 IT 메이커들을 위한 소셜 네트워크를 만들고 있지만서도, 기술 트렌드를 잘 알지 못하거나 디자인과 개발과 같은 기술에 무지할 때가 있다. 테크 업계는 정말 빠르게 변하고 발전하고 있으며, 각 분야가 점점 더 딥해지다보니 가끔은 일부 메이커들의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공감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그래서 많이들 이야기하는 게 T자형 인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나는 지금 — 모양의 제너럴리스트가 아닌가 싶다. 확실하게 잘 아는 분야를 중심으로 사고를 확장하고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엔 큰 경쟁력의 차이가 있음을 점점 더 피부로 느낀다.
종합적으로 정리를 해보면, 나의 적성을 파악하고 필요한 역량을 잘 길러서 장기적으로 잘하고 이길 수 있는 게임을 해야 된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하고 있는 건 확실한데, 잘해서 이기려면 무던히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아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 거기서 게임을 하는 가치가 없다.
2024 Moveforward
회고를 쓰다 보니 엄청 길어졌는데, 결론은 배운 것도 많고 아쉬운 것도 많고 내년엔 더 잘할 수 있는 것도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메이커들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진심인데, 내 역량이 아직 모자라서 더 많이 배우고 실행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회고를 작성하면서 찾아보았는데, 나 같은 IT 업계 제너럴리스트 분들을 모아서 매월 회고를 같이 하고 서로 경험 공유하면서 문제 해결의 영감을 꾸준히 주고받는 커뮤니티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어떤 키워드로 검색해도 안 나온다. 그래서 문제 해결에 진심인 제너럴리스트 분들을 일단 소수(6명 정도?) 모아서 매월 회고하고 이야기하는 걸 가볍게 운영해 보고 싶어졌다. 커뮤니티 이름은 True Problem Solver 클럽이고, 자세한 내용과 지원 방식은 아래 탈리 폼에 정리해두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회고를 보는 모든 메이커분들이 2023년을 잘 회고해서 온라인에 기록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기록하는 과정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내년을 계획하는 것을 넘어서, 곧바로 인생을 바꿔줄 기회를 만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2021년 6월 회고 글을 통해 현솔님과 제니님을 만나 디스콰이엇에 합류했고, 나의 다른 글을 통해서 디스콰이엇 팀원들이나 여러 소중한 관계를 만날 수 있었다.
저 인상 깊엇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