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만들게 된 개인적인 이유 + 짧막한 회고
Disquiet을 정리하는 와중에 데이빗, 성훈과 Space Zero를 만들기 시작한 지 벌써 한 달 반 정도 됐다. 아직까지는 시간을 많이 못 쏟아서 아쉽지만, 곧 풀타임으로 집중할 수 있을 것 같다.
지난주에 쓴 글은 완전히 테크와 비즈니스 관점이었는데, 이번엔 게임을 만들게 된 개인적인 이유를 써 봤다. 단순히 “시장이 크고 돈이 될 것 같아서”가 아니라, “왜 이거여야 하는지”에 대한 진정성 있는 답변은 내 인생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스스로의 동기부여에도 엄청 중요한 요소다.
22년도에 군 전역 후 디스콰이엇에 합류했을 때, 내가 어릴 때 느꼈던 문제들이 어떻게 디스콰이엇을 만드는 데까지 이어졌는지 글로 쓴 적이 있다.
Future of Internet, Algorithm, Network
간단히 한 문단으로 요약하면 이런 내용이다 (사진은 메이플을 즐기던 4살 때 즈음 모습?)
나는 3살 때부터 컴퓨터를 접하고 인터넷을 통해 방대한 정보를 탐색하고 배워오며 역사/탐험/과학 같은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톰 소여의 모험, 로빈슨 크루소, 인디아나 존스, 반지의 제왕 같은 이야기들이 그렇고, 대항해시대, 시드마이어의 문명, 마인크래프트 같은 역사·탐험 게임에서도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는 즐거움을 느꼈다.
시간이 지날수록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가 부상하면서 자극적인 콘텐츠로 인터넷이 오염되고 알고리즘이 사람들의 독립적 사고를 방해하는 문제를 인식하게 됐다. 현실 세계에서도 네트워크 격차가 심해져 정보 접근성이 제한되고,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이 고착화되면서 사람들의 선택의 자유가 줄어든다고 봤다. 그래서 인터넷의 본래 가치인 지식·사람·자본 네트워크를 회복해 모두가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기반으로, 호기심 많은 메이커들이 모여 서로 영감을 주고받는 공간인 Disquiet을 통해 더 나은 인터넷을 만들고 싶었다.
지금 Space Zero를 만드는 것도 사실 이와 거의 동일한 마음가짐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소셜/커뮤니티 → 게임 형태로 바뀌었다는 정도다.
나는 게임이 매우 훌륭한 스토리텔링 수단이자, 사람들을 연결 할 수 있으며, 삶을 배울 수 있는 효과적인 도구라고 생각한다. 게임의 본질은 “재미를 통해 뭔가를 경험하고 배우는 활동’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책, 소설, 웹툰, 뮤지컬, 드라마, 영화 같은 콘텐츠를 좋아하는 이유도 단순히 ‘재미’뿐 아니라 몰입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만든 이야기 안에서 도전과 시행착오, 이겨내는 과정, 인간과 사회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불편함, 과거 혹은 미래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경험 등… 우리가 평생 살면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수준을 몇 제곱으로 뛰어넘게 해주니까. 그리고 그 경험이 생생할수록 우리는 더 깊이 빠져든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완전히 다른 인물이나 상황에 감정이입을 하는 거다. 특히 게임은 이 몰입감을 극대화시킨다.
사회적 상호작용 면에서도 게임은 다른 콘텐츠와 확실히 다르다. 책, 영화, 드라마를 보고 나면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긴 하지만, 게임은 애초에 함께 플레이할 수 있다. 이 차이가 엄청 크다. 이야기를 ‘만들어서 전달’하는 게 아니라 동시에 같이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 특히 샌드박스나 시뮬레이션 류 게임에서 여럿이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경험은 내게도 굉장히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결국 경험의 확장, 스토리텔링, 실시간으로 함께 뭔가를 만드는 유대감—이런 것들은 내가 어릴 때 인터넷에서 느꼈던 가치와 일맥상통한다. 현실이 답답하고 힘들 때, 인터넷과 게임은 지식과 배움의 원천이자 사고와 경험의 확장을 도와주는 최고의 친구였다. 이게 없었다면 지금 난 뭘 하고 있을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나는 무언가에 보답하기 위한 마음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 대상은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들을 만들어 준 작가들일 수도 있고, 컴퓨터와 인터넷을 발명하고 보급해준 과학자와 기업가들일 수도 있고, 자신의 생각과 배움들을 글과 영상 그리고 소프트웨어로 인터넷에 남겨준 누군가일 수도 있고, 그냥 모두일지도.
Space Zero는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간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나 혼자 만든 의미 ㅋㅋ) 마치 모든 인간이 태어날 때, 새로운 세계관이 생겨날 때, 인터넷이 처음 생길 때처럼 말이다. 나는 사람들이 여기서 재밌게 놀고, 같이 이야기를 만들고, 새로운 걸 만들고 했음 좋겠다.
+ 게임에 대한 인식
어릴 때부터 주변 많은 사람들이 게임은 중독적이고 삶에 도움이 안되는 것이라고 여겼다. 뉴스에서 게임 중독의 폭력성을 시험한답시고 PC방 차단기 내려서 모두가 화가 난 것들은 유명한 밈이기도 하다 (코딩 중인데 누가 github 날려버리면 당연히 화 날거잖아, 어떤 회사에 투자했는데 갑자기 다음날 폐업하면 화 날거잖아)
나는 이런 인식도 매우 안타깝다. 무언가에 중독되어 건강하게 즐기지 못하는 것, 그건 게임 만의 문제는 아니다. 뭐든 지나치면 문제가 된다. 게임은 아름다운 종합 예술이고 위에서 얘기했던 것처럼 사람들의 삶에 크고작은 영향을 주는 매개체다. 한국 미디어 컨텐츠 수출에서 게임 비중이 60% 수준으로 음악/영화/드라마 등 보다 경제적 기여도 매우 크다. 계속 많은 사람들이 좋은 게임을 만들다보면 인식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려나.
+ 이번 Space Zero 데모 런칭에 대한 짧은 회고
이번에 데모 버전은 “사람들이 랜덤한 아이템을 수집하고 만드는 경험 자체를 좋아하는가?” 에 대한 질문에 답을 받기 위해 Product Hunt와 Hacker news에 올려봤다. 물론 itch.io, Kongregate, IndieDB, IGDB 같은 게임 소개 사이트나 인디게임 개발 관련 subreddit/Discord에도 올려봤지만 유입은 PH & HN이 가장 많았다. 4일동안 500명 정도가 가입했다.
Product Hunt와 Hacker news에 얼리어답터, 똑똑한 너드들이 많지만 게이머들만 있는 곳은 아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게이머인 사람들이 피드백과 반응을 남겨준 것 같다.
여러 피드백들을 종합해 보았을 때,
돌아다니고 줍고 만들고 → 이거로는 게임을 했다고 느끼는 사람이 전무한 수준으로 보임, 어떠한 규칙이나 목표가 없기 때문
또한 AI로 아이템을 조합하고 만드는 것 기능 자체가 아직은 충분히 흥미로운 퀄리티로 느껴지지 않음 (만들고 할 수 있는게 휘두르는거 밖에 없음)
게임을 공개적으로 어딘가에 보여줄 때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대치는 상당히 높다는 것을 이번에 체감함 (기능 한 두개의 경험보단 전체적인 경험을 데모 수준에서도 요구)
나는 게임을 많이 해왔고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솔직히 잘 만드는 법은 모른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한다고 요리를 잘하는 게 아닌 것처럼. 객관적으로 게임 개발, UX, 비쥬얼, 사운드 등 이런거 솔직히 아는 거 거의 없다. 디스콰이엇에서 배운 것들, 지금까지 해온 것들 모두 unlearn하고 완전히 새로운 정신 상태로, -1 부터 배운다는 생각으로 임해야 된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다만 게임을 만드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 blind spot이 많았고, 그래서 무엇이 부족한지 객관적인 위치를 알고 싶었는데, 이번 런칭으로 알게 돼서 매우 많이 배웠다. 앞으로 뭘 해야될지 우선순위도 매우 명확해졌다. Launching now is the fastest way to find out what’s missing. 이제 또 몇 주 동안은 조용히 공부하고 만들고 연속이 되겠지



게임에 스토리나 목표가 생기면 훨씬 재미있어질 것 같아요!
지금은 무언가를 줍줍해서 만드는 방식이 살짝 마인크래프트와 비슷한 느낌이네요.
마인크래프트도 엔더 드래곤을 잡는 식으로 어떤 목표가 있는 것처럼 이 게임에도 그런 목표가 주어지면 더 흥미롭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무슨 아이템이 나올지 궁금하긴 하더라고요. 아직 사용처가 없어서 제 스페이스(?)에 버려(?)두긴했는데… 무튼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