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하고 있는 다양한 고민, 생각, 경험들이 뒤섞인 글이다.
오랫동안 디스콰이엇이라는 제품을 운영하면서, 그리고 수많은 메이커들의 제품들을 보고 사용해오면서, 내가 제품에 대해 갖고 있는 Taste가 정말 많이 올라갔음을 느낀다. 그리고 그럴수록 더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한다. 아직도 세상에는 많은 문제와 불편한 것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평소 살아가면서 충만함, 따듯함, 배려, 영감 같은 것들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는 정말 좋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경험할 때이다. 이런 제품들은 정말 유용함과 동시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 그리고 보는 것만으로 좋은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이는 대단하고 혁신적인 제품이 아니라 일상적인 것에도 적용된다. 매일 아침 마시는 오페라빈 커피, 메모를 위한 무인양품 무지 노트, 향을 채워주는 논픽션 룸스프레이 등등.. 소프트웨어 중엔 Matter, Cursor, Spotify, Raycast, Vercel 같은 것들이 최근 내 삶에 가장 큰 에너지를 준다. 내가 제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오랫동안 사용할 것에는 어느 정도 투자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해서, 적당한 걸 싸게 여러번 사는 것 보단 좋은 걸 비싸게 사서 오래 쓰는 편이다.
디스콰이엇을 하면서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지만, 정말정말 좋은 제품을 만든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려운 만큼 포기하고 싶거나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도 어쩔 수 없이 자주 든다. 이럴 때 마다 나에게 큰 위안이 되어주던 글을 찾곤하는데, 특히 stevejobsarchive의 Make something wonderful과 The Objects of Our Life에서 큰 위로와 힘을 얻곤 한다. 두 글에서 Jobs는 아름답고 유용한 것을 만들어 인류에 대한 사랑을 표현한다고 한 것이 마음 속 깊이 남는다. 나도 아름답고 유용한, 정말 좋은 제품을 만들어 소중하고 중요한 사람들에게 보답하고싶다. 그게 곧 사회를 위한 것이고,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니까. 그러기 위해선 매 순간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적당히 괜찮은 것은 별로 괜찮지 않다. 훌륭해야한다.
훌륭한 제품을 만들기 위해선 여러가지가 필요한데, 단순화해보면 3가지다. 바로 기술, 브랜드, BM이다.
기술
기술의 발전은 이전에 불가능했던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 새로운 해결책의 가능성을 열어준다. 이전에 ‘더 나은 도구 → 더 나은 기술’ 이라는 글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썼는데, PC라는 도구가 나오면서 소프트웨어, 인터넷과 같은 기술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소프트웨어, 인터넷이 발전하면서 더 작은 PC에 대한 니즈가 생겼고 이는 모바일이라는 도구가 나오게 했다. 이후 앱 생태계가 생기고 위치 기반 데이터, 사진 데이터, 검색 등 훨씬 더 많고 다양한 데이터 수집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방대해진 데이터를 학습하기 위한 도구로 머신러닝 발전이 가속화되고, 이는 현재 AI 기술 붐이 일어났다.[1]
그리고 아래에 브랜드에 대해서 적었는데, 적합한 기술과 브랜드가 만나서 혁신적인 유저 경험을 만들어내면 사람들의 인식와 행동이 달라지는 것 같다. 이 수준이 되면 정말 다른 수준의 창작을 한 거라고 생각한다.
브랜드
브랜드는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느낌과 상상되는 이미지다. 그러므로 느낌과 이미지가 선명해지고, 개개인이 깊게 공감할수록 좋은 브랜딩이다. 앞으로 제품 개발 비용이 0으로 수렴하게 되면서, 차별화를 줄 수 있는 몇 가지 요소 중 가장 강력한 것이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수많은 컨텐츠와 광고, 그리고 주변의 목소리들에 둘러쌓여 살아간다. 여러 목소리를 내는 브랜드는 결코 기억될 수 없다. 꾸준히 하나의 메세지를 집요하고 효과적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해야한다. 그러다보면 자연스럽게 브랜드에 진정성이 담기고, 우리만의 차별성이 점점 드러나게 된다. 브랜딩은 색, 폰트, 단어, 소리, 향, 맛, 스토리 등 인간이 보고 듣고 느끼는 모든 것에 녹아들 수 있다. 그 경험이 곧 브랜드가 된다. 소프트웨어 제품들도 소프트웨어 밖에서의 브랜딩이 더 중요해질 것 같다.[2]
여기에 요즘 더해서 드는 생각 중 하나는, 이제는 개인이 제품을 만들고 마케팅하는 상황이 되었고, 그래서 개인이 갖고 있는 개성이 브랜드라는 생각도 든다. 나만이 갖고 있는 유니크한 취향이나 특징을 진실되게 보여주는 것 만으로도 다른 이들과 차이점이 생기고, 이게 꾸준하면 개인도 브랜드가 되는 것 같다.
BM
수익 모델이 있어야만 지속가능하다. 그리고 지속가능해야만 세상에 주고 싶었던 가치를 꾸준히 줄 수 있다. 처음부터 수익이 나는 것을 하거나, 그렇지 않다면 내 자본이나 투자금으로 버티기를 해야하는데, 내 성향에는 전자가 더 잘맞는 것 같다. 오랫동안 결과로 보이지 않는 것보단 즉각적으로 보이는 것이 더 재밌기도 하고, 빠르게 성장해서 기업가치를 높이는 방식이 유용하고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데 항상 필수라고 생각하진 않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스스로 돈을 벌면서 미션에 집중하는 구조를 만든 멋진 제품/기업들이 이미 꽤 있다 (예를 들어 국내엔 딜라이트룸, 해외엔 Basecamp 같은 곳). 디스콰이엇처럼 플랫폼/소셜 제품을 잘 만들려면 트래픽 규모가 달성되기까지 버텨야되고, 그러려면 처음부터 돈 벌 수 있는거 해야된다.
필요한 것들이 이렇게 3가지라면, 어떻게 잘 만들 수 있을까?
스토리텔링
일단 기존에 별로인 것을 더 낫게 만들려면, 기존 시스템에 얽힌 이해관계를 파악해서 그들이 움직이게 만들어야한다. 정부 관계자일 수도 있고, 업계 전문가일 수도 있고, 10대 학생들일 수도 있다. 이는 엄청 복잡한 일이고, 그래서 진정성 있는 스토리텔링이 중요하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목적에 자발적으로 공감하고 동의하여 행동하게 해야한다. 이러한 스토리텔링은 이해관계자, 고객, 투자자를 넘어서 팀원을 설득할 때에도 매우 중요하다. 현솔은 내가 만났던 사람들 중 가장 진정성 있는 사람인데, 예전에 스토리텔링 관련 글을 쓴 적이 있어서 읽어보면 좋겠다.[3]
퀄리티 vs 속도
이건 내가 좋아하는 Ami Vora의 섭스택 글의 내용인데, 그냥 좋아서 그대로 4가지 원칙을 가져왔다.[4]
나쁜 제품은 만들지 않는다
퀄리티는 고객의 우선순위를 반영한다
속도를 높이는 것의 의도는 리소스 낭비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팀에게 Trade-off를 선택할 권한을 준다
여기에 내 생각을 더해보면, 퀄리티와 속도 중 무엇에 집중하든, 계획한 것을 잘 실행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퀄리티든 속도든 실행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결국 그건 의미가 없다. 또한 애초에 방향이 잘못되면 오히려 빠른 것이 독이 될 수 있다. 방향을 잘 설정해서 10년 동안 간다면, 무작정 빠르게 해서 10년 갔을 때 되돌아갈 5년을 아낄 거다.
그냥 두서없이 막 써서 기승전결도 없고 결론도 딱히 없다. 그냥 유용하고 아름다운 것을 만드려면 어떻게 해야되는지, 생각을 막 정리하고 툭 던져놓기. 좋은 제품 만들고 싶다.
Footnotes
[2] 제품개발 비용이 0으로 수렴하면서 바뀔 것들에 대한 생각
[3] 효과적인 스토리텔링으로 팀빌딩, 투자 유치, 유저 확보하는 방법
[4] Making the tradeoff between speed and quality
종종 힘들 때 찾는 글
조은글냠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