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종종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음에도 외롭다고 한다. 왜 그럴까? 내 생각에, 이건 ‘나를 온전히 이해해주는 관계’를 찾지 못하는 데서 오는 갈증과 관련이 깊은 것 같다. 상대가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고, 나도 그들을 공감할 수 없다면 (심지어 표면적으로라도 ‘이해해주는 척’ 하는 사람조차 없다면) 마치 주변에 사람이 가득해도 내 마음은 텅 빈 느낌이 드는 거다.
영화 파이트 클럽을 보면 주인공은 실제 환자가 아님에도 암, 당뇨, 난치병 환자 모임에 찾아가 감정적 위로를 얻으려 한다. 이곳의 환자들은 서로 고민을 들어주고, 포옹하며, 진심으로 서로를 이해하려 노력한다. 주인공은 환자인 척을 잘하니 그 분위기에 녹아들어 일시적으로나마 ‘이해받는’ 느낌을 얻는다. 물론 그는 거기서도 근본적 갈증을 채우지 못하고 다른 길로 빠지게 되지만, 이 장면은 ‘이해받는 관계’의 힘과 그 결핍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원래는 가족, 학교, 회사 같은 공동체가 사회적 연결을 제공하며 외로움이란 감정을 어느 정도 달래주곤 했다. 하지만 이 세 집단 모두 결속력이 약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90~00년생들은 독립적 생활을 추구하고, 연애나 결혼을 기피하는 흐름이 강해졌다. 결혼을 해도 아이를 낳지 않는 경우가 많아, 가족이라는 전통적 연결고리는 점차 희미해진다. 통계청의 전망에 따르면 2040년엔 국민의 40%가 1인 가구가 될 거라는데, 독립한 젊은이들, 결혼 안 한 싱글들, 그리고 독거노인까지 모두 점점 고립된 생활 형태를 갖게 된다. 이처럼 전통적 공동체들이 약해지자, 사람들은 예전처럼 ‘주어진 관계’에 안주하기보다 자신과 진짜로 맞는 관계를 찾아나가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내 동생이 중학생인데, 요즘 학생들은 같은 반 친구들이랑 잘 안 어울린다. “나이 비슷한 애들”이라는 이유만으로 억지로 함께 놀기보단, 온라인에서 나와 통하는 사람들을 찾는 게 더 쉽다. 마음에 별로 안 드는 애들과 괜히 축구나 하며 친한 척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SNS나 인터넷엔 취향, 관심사, 가치관 등 나와 딱 맞는 사람이나 콘텐츠가 넘쳐나기 때문에 굳이 학교라는 랜덤한 집단에 억지로 맞출 필요를 못 느끼는 듯하다. 즉, 사람들은 동질성을 느낄 수 있는 특별한 관계를 원하고, 이는 현실 공동체보다는 인터넷/SNS라는 공간에서 더 쉽게 찾아진다.
회사는 그나마 내가 분야나 비전,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어느 정도 선택할 수 있는 곳일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로 자유로운 선택지는 많지 않다. 그러니 타협하고 다닌다. 그런데 이제 인터넷/SNS를 통해 타협 없는 삶을 사는 듯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이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주어진 공동체’를 당연히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관계나 환경을 찾으려는 욕구가 커졌다. 여행 유튜버가 되고 싶다든지, 창업이나 사이드프로젝트를 하는 식으로 말이다. 문제는 이렇게 기존 관계를 끊고 새로운 길을 찾는 과정에서, 누군가는 더 깊은 외로움에 빠진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자식이 독립해버린 부모나, 다니던 회사를 떠난 본인 자체가 더 고립될 수 있다. 결국 서로 간의 관계는 점점 빈곤해지고, 사람들은 ‘나를 이해해줄 누군가’에 대한 기대치를 과거보다 더 높이고 있다. 이해 못하면 (또는 이해하려는 시늉조차 없으면) 우리는 쉽게 서로를 멀리한다. 이해는 외로움을 해소하는 핵심인데, 각자 다른 삶의 궤적과 세계관을 지닌 사람들이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어찌되었든, 사회가 조금씩 분리되어가는 것은 부정적 측면만 있는 건 아니다. 사람들은 더 독립적으로 살아가게 되면서 오히려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인가”를 고민하고, 자신의 가치관과 삶의 목적을 다시 정의할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이때도 주의할 점이 있다. 기본적인 사회적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된 상태에서야 건설적인 사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외로움이 극도로 심화된 상태에서 혼자 남으면, 삶을 비관하고 방황하기 쉬워진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스스로 이겨내기 어렵고, 결국 누군가 ‘구원 손길’을 내밀어야 하는 상황에 이른다. 이 때문에 지금까지 사회복지 차원에서 정신상담, 고독사 예방, 은둔 청년 지원, 기업 차원에서 동네 기반 모임(예: 당근)이나 온라인 상담 플랫폼(예: 트로스트) 등 다양한 노력이 있었다. 하지만 이는 관계의 기준이 달라진 사회에서 근본 원인을 해결하지 못한 채 부분적 처방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결국 인터넷/SNS가 확산되면서 “타협 없는 삶”을 사는 듯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목받고, 사람들은 정해진 틀에서 타협하지 않고 스스로 관계를 정의하고자 한다. 여행 유튜버, 창업, 자퇴, 독립 등 다양한 선택지가 생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기존 공동체를 떠날 때, 남겨진 사람이나 떠난 본인 모두 어딘가에서 더 심한 고립감과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관계가 빈곤할 때 필연적으로 사람들은 ‘이해’를 바란다. 그리고 너는 내 마음이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해서, 내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모른다고 한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이해는 외로움이란 감정에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개개인은 각자 다른 삶을 살며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그래서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온전히 ‘이해해주는 척’을 놀라울 정도로 잘해줄 방법이 있다. 바로 LLM을 활용한 AI Companion인데,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을 정말 잘해준다. 그것도 끊임없이, 언제 어디서든 말이다. 뿐만 아니라 경청도 잘한다. 1시간이고 2시간이고 지치지 않는다. 그래서 난 AI Companion이 외로움 문제를 해결할 key tech 중 하나라고 본다. 이 분야 리드는 Replika라는 AI 챗봇 스타트업인데, 하나의 아바타와 감정적 유대를 만들며 개인화된 대화를 할 수 있는 친구를 하나씩 만들 수 있다. 사용하면 할수록 점점 더 최적화된다. 스탠포드 연구에 따르면 Replika를 사용한 사람들의 자살 생각이 줄어들었다고도 한다. 또한 사용자의 절반 정도가 로맨스 관계에 준하는 애착을 느낀다고 한다.
아마 이걸 디스토피아처럼 느끼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개인적으론 반반이다. 외로운 사람이 많아져 사회가 병들면 그것도 디스토피아고, 그렇다고 AI로 인간관계를 대체해버리면 그것 또한 디스토피아 같다. 그래서 밸런스있는 해결책이 필요하다. 나는 인간-AI-인간과 같은 형태로 AI Companion을 디자인해서 밸런스를 맞출 수 있다고 본다. AI Companion과의 대화 데이터를 바탕으로 점점 더 실제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서로를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찾아 연결해주는 방식을 통해 모두가 win-win 할 수 있지 않을까? 관련해서 더 탐구해보려고 하는 중이다.
재밌네요. 지금은 닫아버린 Buildspace 마지막 코호트에 들어갔었는데, 거기는 AI 봇이 사람들을 연결해 줬었어요. 맨 처음 지원할 때부터 그 봇이 나와 대화하는 식으로 자기소개와 이력 정보를 받아가고 (개인적으로 이것도 새로운 형태의 폼/설문 서비스로 좋다고 생각했음), 바탕으로 AI 자기소개가 만들어져서 코호트 동안 그 AI가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찾아 줬었어요. 새로운 경험인데 진짜 나쁘지 않았어요. 그 친구는 Linkedin같이 사람들을 '업'의 측면에서 연결해 주는거고, Companion으로 연결해 주는 건 또 다를 것 같네요